선학동 언론보도

[스크랩] 유채의 바다, 꽃이 아닌 마음--장흥 ‘선학동’ 유채꽃

선학농장 최귀홍 2014. 9. 28. 04:24
▲ 선학동의 유채. 바람이 불어오면 유채는 노란 꽃의 바다가 된다.

 꽃들 속에서 봄날은 오고 또 봄날은 간다. 벚꽃이 비처럼 날리고 나니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유채가 일렁인다. 마을이 학이고, 산이 학이며, 유채꽃 속에 또 학이 있다. 원래 이름은 ‘산저’다. 산 아래 마을이라는 뜻인데 지금은 ‘선학동’이 더 익숙하다. 어떤 영화는 사람들의 운명을 바꾼다. 산저 사람들에겐 임권택의 그 영화 ‘천년학’이 그랬다.

 선학동,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무대였던 곳. 그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졌으니 ‘천년학’의 무대 또한 거기다. 이제 날아오르는 학은 볼 수 없다. 관음봉(주민들은 ‘공기산’으로 부른다. 관음봉은 이청준이 만든 소설적 지명이다.) 긴 산 그림자를 담아낼 바다가 사라졌다. 밀물이 들 때 학이 날아오는 것 같았다는데, 이젠 전설 같은 구전이 돼버렸다. 간척은 바다와 갯벌만 묻어버렸던 게 아니다. 한때 마을 사람들의 선명한 현실이었던 학도 묻었다.

 그러나 떠났다고 아주 간 것은 아니어서 학은 간혹 기억의 날개를 편다. 꼭 한 번 학이 제대로 날았다. 임권택 감독의 특별한 선물이자 배려였다. 모르는 사람에겐 아무 것도 아닌 풍경이 산저마을 사람들에겐 눈물을 고이게 만들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간척된 땅을 밀어내고 바다를 불러왔다. 다시 학이 날았다. 기억 속에 영영 묻혔던 꿈이 현실에서 살아난 것이다. 선물을 받았으면 갚는 게 세상의 이치다. 산저 사람들은 고민 끝에 영화의 촬영장소를 보러온 이들에게 유채꽃을 선물했다. 유채 씨는 제주도에서 직접 받아왔다. 그냥 꽃이 아니다. 그것은 배려의 마음이고 보답이다. 주고 또 받는 마음이 산저의 유채꽃 속에서는 아름답게 담겨 있다.

 

 꽃잎처럼 날리는 사랑

 ‘천년학’은 바람처럼 떠도는 자들의 애절한 기록이다. 떠도는 자리에 사랑의 정착은 없고, 늘 길은 어긋난다. 가까워지면 다시 멀어지는 일의 무한반복이다. 고수 동호(조재현)는 사랑하는 누이 송화(오정해)를 찾아 하염없이 헤맨다. 송화는 자신의 소리처럼 애절한 한을 쌓아가는 시간을 산다. 길은 늘 어긋나 서로 만나지 못하고, 간혹 만나면 그리움이 너무 깊어 말을 꺼내지 못한다. 사는 일은 언제나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말보다 자기 안에만 담아둬야 하는 말이 더 많다.

 선학동에는 영화의 주막 세트가 아직 남아있다. 아주 공들여 지었다. 소나무 한 그루도 고즈넉하게 서 있다. 주막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학과 어우러진다. 유봉의 마지막 유품인 북을 전해 받은 동호는 북을 친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송화의 소리가 들려온다. 북과 소리가 하나가 된다. 그 순간이다. 막혔던 회진 바다에 물이 차오르며 일렁인다. 순간 산 그림자가 바다에 떨어지고 두 마리 학이 되더니 선명하게 날아오른다.

 임권택 감독은 학이 비상하는 이 장면을 어떤 식으로든 전작 ‘서편제’에 담아내고 싶어 했다. 마음은 간절했지만 기술이 따라주지 못했다. 아직 90년대 초반이었고 이미 사라진 바다를 영상으로 만들어낼 만큼 컴퓨터그래픽이 발달하지 못했다. 마음 안에 꾹 눌러뒀다가 자신의 100번째 영화를 만들며 기어이 학이 날게 했다. 영화에서나마 그 장면을 만난 산저 사람들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산저 마을 최귀홍 이장은 “그 때 장흥군민회관서 영화를 틀었는디 임권택 감독님이 영화 시작하기 전에 그러더라고. 진짜 평생을 두고 보고 싶어 했던 장면이 하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제. 바다를 다시 불러와 학을 날게 만들어분께 마을 사람들이 꿈인가 생시인가 했제. 나이 좀 자신 아짐들은 모도 울고 그랬어. 학이 너무나 반가워서”라고 말했다.

 

 유채꽃, 그 아름다운 배려

 노란 꽃물결이 넓다. 마을과 산 사이, 모든 밭을 유채꽃이 채우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바람이 불어오면 유채는 노란 꽃의 바다가 된다. 일렁이는 꽃빛이 노란 물빛이다. 유채로 인해 산저마을의 봄은 늘 환하다. 올해로 4년째 꽃은 봄의 중간 지점에서 어김없이 피어나고 있다. 사실 유채꽃은 주민들의 아름다운 배려다.

 ‘천년학’ 촬영지로 산저마을이 유명세를 타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보여줄 게 없었다. 주막세트 보고 나면 끝이라서 많이 미안했다. 주민들이 의견을 모았고, 넓은 밭과 논에 유채를 심기로 했다. 그 유채들은 오로지 꽃을 위해 피어난다. 생산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꽃이 지고나면 그냥 갈아 엎는다. 유채가 주는 소득은 보조금 약간이고, 다른 작물을 심을 시간을 잃게 되니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많이 손해다. 그나마 보조금도 올해부터는 절반으로 줄었다.

 셈 같은 건 버린 지 오래다. 조용히 가라앉은 산골마을에 찾아와 주는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사실 유채꽃은 관리를 하면 할수록 손해다. 그러나 주민들은 꽃이 잘 피어나도록 거름도 주고, 관리도 해준다. 남의 밭은 꽃이 가득한데 제 밭만 꽃이 비어있으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산저마을엔 아직 인정이 살아있다.

 선학동에 가서 유채꽃을 눈에 담았다면 아름다움 너머에 피는 이면을 먼저 살필 일이다. 그 꽃은 그냥 꽃이 아니다. 노랗게 피어나는 사랑이며 시골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 씀’이다. 선학동의 유채는 내면으로 따뜻하다.

 글=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사진=함인호 ino@gjdream.com


 ▲관음봉. 저 산이 바다에 누우면 학이 나는 모습으로 변한다.
 ▲영화 `천년학’ 주막집 세트.

출처 : 길위에 길이있다 ^^
글쓴이 : 짱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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