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학농장

[스크랩] 영화 <천년학> 촬영지 장흥 ‘선학동’

선학농장 최귀홍 2015. 2. 22. 20:31

▲ 노랗게 넘실대는 유채밭과 색색 지붕이 아름다운 마을. 유채밭은 <천년학> 촬영지를 찾아
오는 사람들을 위해 산저마을 사람들이 심고 일군 것이다.
ⓒ 김창헌 기자

종점지 회진, 버스에서 내린 동호는 선학동으로 서둘러 간다.
비상학(飛翔鶴)을 보기 위해서다. 해거름 포구에 물이 차오르면 관음봉 긴 산그림자 물결에 실려 신비로운 선학의 자태로 일렁인다 . 문득 한 마리 학이 물 위를 날아오른다.
이제 그 모습 볼 수 없다. 산굽이 한참이나 구불구불 돌아가, 마지막 산모롱이 올라선 동호 눈앞에는 바닷물 대신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바닷가에 외따로이 서 있는 ‘선학동 주막’
선학동에 간다. 이청준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무대이자,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해서 만든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의 무대. 때는 봄빛. 길은 배꽃에 물들고 자운영에 물들고 보리밭에 일렁인다.

선학동은 장흥 회진면 산저마을. 소설에서 ‘선학동’이라 한 것은 상징적인 학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다. 이청준은 “그 날아오르는 학의 품 안에 안겨진 마을인 셈이다”라고 쓰고 있다.

▲ 유랑자처럼 떠도는 영화 속 인물들처럼 바닷가 외따로이 서 있는 ‘선학동 주막’과 소나무 한
그루.
ⓒ 김창헌 기자

저 맞은편 산줄기가 관음봉이란 걸 알겠다. 중천에 떠 있는 해 산 쪽으로 기울어 가고, 봉우리 ‘고깔처럼 뾰족하게 하늘로 치솟아’ 있다. 그러했으리라. 저 제방 없었다면 물길은 하염없이 파고들어 선학동을 적시고 산자락을 적셨을 터. 금빛으로 물들며 물결치고 산 그림자 너울너울 비상학이 훨훨 날아올랐을 터.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이곳에 와서 간절하다.

영화 <천년학>은 사연 많은 의붓남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 고수 동호(조재현)는 사랑하는 누이 송화(오정해)를 찾아 하염없이 헤매고, 송화는 숙명처럼 소리꾼의 길을 가며 애절한 세월을 살아간다. 그리워하면서 만나지 못하고 만나면 말하지 못하고 다시 떠나는 어긋남이 이어진다.

▲ 선학동 주막’은 이야기가 시작되고 나아가는
영화의 주무대. 동호는 주막사내에게 사랑하는
누이 송화의 소식을 듣게 된다.
ⓒ 김창헌 기자
또한 <천년학>은 자신이 못 이룬 예술을 제자를 통해 이루려는 실패한 소리꾼인 유봉(임진택) 이야기. 사랑받지 못한 채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퇴락한 스타배우 단심(오승은)의 이야기. 어느 것 하나 쉽게 이루지 못하지만 그 마음 끝내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유랑자처럼 떠도는 영화 속 인물들처럼, 이야기가 시작되고 나아가는 ‘선학동 주막’은 바닷가에 외따로이 서 있다. 날아가던 학이 쉬어갈 법한 소나무 한 그루 옆에 서 있다. 봄인데도 새잎 내밀지 못했다.

이 소나무도 곡절이 많다. 선학동 주막을 만든 주병도 미술감독은 어느 문중 땅에 있는 이 범상치 않은 소나무에 반했다. 옮겨 심으려 했으나 문중의 반대에 부딪혔고 장흥군이 나서서야 해결됐다. 터널을 지나며 굵은 가지 잘리고 급하게 심은 탓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선학동 주막은 동호가 누이 송화를 찾다 못해 마지막 발길한 곳이다. 애타게 그리워하던 사람의 소식을 듣게 되는 곳. 또한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곳. 유봉의 유품인 북을 전해 받은 동호가 북을 치자 어디선가 송화의 소리가 들려와 어우러진다. 막혔던 바닷물이 서서히 차오르고 이내 산그림자 떨어지더니 두 마리 학이 소리 장단에 맞춰 날아올랐다.
주막 앞에 펼쳐진 회진바다는 영화 속 장면들을 서서히 떠올려 보라는 듯 선선한 바람을 실려 보낸다. 

▲ 산저마을 뒤로 펼쳐진 유채밭.
ⓒ 김창헌 기자

ⓒ 김창헌 기자

유채꽃밭은 산저마을 사람들의 ‘선물’

산저마을은 노오란 유채꽃들이 들떠있다. <천년학> 촬영지를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선물’이다. 하늘색 주황색 지붕들 너머로 온통 노랗다. 밭이랑 따라 온통 꽃밭, 꿈길이다.
꽃밭 너머 푸른 바다, 아이들 노랫소리 들린다. 이장 최귀홍(52)씨, “제주도에서 비행기 타고 날아온 꽃이어라. 이거 심을라고 우리가 애깨나 썼소. 사람들 찾아온디 우리 고향 멋지게 보여주고 싶었제라. 감자 고추도 갈아 묵어야 한디 우리 마을 예쁘게 봐줄라고 한 건께 마음은 알아주쇼.”
군청에서 조성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마을 사람들의 아이디어이고 수고였다. ‘경관보존직불제’를 어렵게 신청했다. 보조금 조금 받고 밭농사를 포기했다.

미역 끝나고, 미역발 정리하던 한 할머니는 “반찬 해 묵을 것이 없는게 깝깝하제. 근디 마을 좋아지라고 한 건께 빠지믄 안되제. 꽃 속에 산게 좋아. 방에서만 나오믄 눈이 훤해. 우리 아들놈은 인자 엄마 일 안하고 살겄다고 나보다 더 좋아라 하고. 놀러 온 양반들이 해외보다 더 좋다든마. 여기 살았으믄 좋겄다고” 하며 얼굴 가득 꽃을 피운다.

산 바로 아래쪽에 있는 밭은 유채꽃을 피우지 못했다. 산림에 속하는지라 보조금이 나오지 않는 밭이다. 밭주인은 마을에서 하는 일이니 보조금 못 받더라도 유채를 심겠다고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말렸다. “보조금이 쬐까여. 그려도 나는 받고 거기는 못 받으믄 미안해서 어찌게 산당가. 상추랑 무랑 많이 숨궈(심어) 갖고 이 집 저 집 나놔주라고 했어.”

▲ 집과 소.
ⓒ 김창헌 기자

“요 앞이 바다가 돼 갖고 반짝반짝거린디 진짜 황홀하더만”

최귀홍 이장은 소설 <선학동 나그네>와 영화 <천년학>의 박사가 됐다. 트랙터 몰고 가다가도 사람들 모여 있으면 내려와 설명을 한다.
“소설에서는 저 산을 관음봉이라 한디 여그 사람들은 ‘공기산’이라고 해라. 이청준 선생이 어떻게 알고 썼는지 마을 어르신들 말하고 똑같당께라. 저 산 중턱에 구슬바위(염주바위)가 있고, 요 앞 데레미가 스님 목탁이고 세트장 있는 디는 ‘동섬’이라고 작은북이제라. 여주인공이 아버지 유골 가지고 오잖애라. 실제로도 여그가 명당자리여라. 제방은 일제시대 때 막았어라. 나는 못 봤는디 물 들와갖고 파도가 치믄 훌렁훌렁 하니 진짜 (산그림자가) 학이 나는 모양이었다고 하데요.”

영화 촬영 시작 때부터 영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신문, 잡지 기사를 꼼꼼히 챙겨왔다. “<천년학>이 임권택 감독 100번째 영화라는 것은 알지라?” 하고 시작한다.
“컴퓨터 그래픽 아니었으믄 100번째 영화를 못 만들었어라. 요 앞이 간척돼 갖고 다 논인디 물이 들오는 장면을 찍어야 한께. 그걸 컴퓨터로 그린 것이제라. <서편제> 맨들 때 <선학동 나그네>도 늘라고(넣을려고) 했는디 그때는 컴퓨터가 안 된께 못 넣다고 임 감독이 그러든마요. 마을 사람들 영화 보믄 깜짝 놀랄 거라고 했는디 진짜 황홀하더만, 요 앞이 바다가 돼 갖고 반짝반짝거린디 진짜 아름다워라.”

▲ 산저마을 앞 ‘늦은뻘’에서 나박 꼬막 키조개 등을 잡고 있는 어민.
ⓒ 김창헌 기자

최귀홍 이장도 마을 할아버지들과 함께 영화에 출연했다. 어린 송화가 주막 앞에서 <둥당개타령>을 할 때 가락에 고개 끄덕거리며 지켜보는 구경꾼 중의 한 사람. 맨 가운데 조금은 젊어 보이는 사람이다.
“농사짓는 것만치나 영화 찍는 것도 보통이 아니더만. 몇 번을 왔다갔다 한당께. 서로 성질도 내고.”

지금은 유채가 활짝이지만 가을에는 하얀 메밀이 소복이 피어 있을 것이다. 유채 지면 메밀밭으로 꾸민다고 한다.

ⓒ 김창헌 기자

“건져 올릴 것이 많은께 일 년 내내 비상 걸려 갖고 있어”

마을 돌면 농사도 짓고 바닷일도 하는 마을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김발이 쌓여 있고 그물도 마당에 널려 있다.
김순아(60)씨는 “여가 쌈 싸먹는 ‘새미역’을 첨으로 양식한 디여라. 포자 줄에다 끼워 갖고 김 미역 다시마 엄청나게 해라”고 자랑한다. 통발 넣어 낙지 잡고 매생이 감태 꼬막 방석고동 청각 쭉쭉 빨아먹는 갈고동, 바다에서 나오는 게 수백 가지이다. “건져 올릴 것이 많은께 일 년 내내 비상 걸려 갖고 있어. 묵기는 쉬워도 할라믄 뻗쳐.”

조금 있다가 물 나면 ‘늦은뻘’에 팔자 모양 구멍에 깊이 박혀 있는 나박, 살짝 내다보는 꼬막, 자기 주우러 간지 모르고 걸터앉아 있는 소라, 뾰족하니 입 벌리고 있는 키조개 잡으러 가야 하는데 가기가 싫단다. “유채 피고부터 살랑살랑 놀고만 자퍼(싶어). 일해야 한디 쩌 뒤로 해서 몇 바꾸(바퀴)를 돌았당께. 어제는 관광 온 사람이 우리집 넘어보든마 좋다고, 마당에 꽃 피우고 깔끔하게 산다고. 있는 떡 한 접시 줬더만 꼭 다음에 주스 사 갖고 들린다 하든마. 둘이 앙거서 별 얘기를 다 했어.” 

일 조금 못해도 요새는 사는 재미가 있다. 영화 촬영지 보러, 유채꽃 보러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척들이 들이닥쳤다. 멀리 떨어져 사는 큰놈이 다녀가고 작은놈은 이번 주말에 온다는 전화가 왔다.
“아들놈이 사진기 있슨께 사진 많이 찍었어. 손주 보듬고도 찍고 업고도 찍고 가족단체 사진도 찍고. 담에 올 때 뽑아 온다든마.”

▲ 시골 군 단위에서 열린 시사회. 영화 관계자들이 찾아 장흥군민과 함께 했다. 왼쪽부터 영화
제작사 ‘키노2’ 김종원 대표 임권택 감독, 촬영감독 정일성, 배우 오승은, 오정해, 조재현.
ⓒ 김창헌 기자

“우리집 문짝을 뜯어갖고 갔당께”
장흥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천년학> 시사회

“여섯 번을 ‘캇’ 하든마. 조재현이가 뚜드려(두드려) 맞는디 여섯 번을 얻어터져. 화면 한번 찍을라고 몇 번을 빠꾸(다시) 하고.”
‘영화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것이구나’ 알았다는 동동리 김현태(69) 할아버지.

지난 4월10일 장흥 문화예술회관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시사회가 군 단위 시골에서 열린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다. 본디는 3월30일에 진행하려 했으나 영사기 조도가 낮다는 기술적인 문제로 취소돼 버렸다. 이번 시사회는 부산국제영화제 개최회사에서 영사기를 빌려 열었다. 차근차근 앉아 기다리는 동안 좌석마다 영화 이야기가 무르익는다.

“우리집 문짝을 뜯어갖고 갔당께. 이따가 보믄 나올 거네. 키 작고 안경 쓰고 얼굴 동굴동굴한 사람 앙거(앉어) 있을 건디, 그 사람 뒤에 있는 것이 우리집 문짝이여. 잘 봐.”
김하용(66) 할아버지이다. 장흥읍에서도 영화 촬영이 이뤄졌다 한다. 동동리와 예향리 시장통 골목에서 낮에도 밤에도 찍었다. “옛날집만, 골목도 허름한 디만 찾아 댕기든마. 밥 하는 사람, 줄 잡는 사람, 장비 나른 사람, 영화 찍을라믄 돈이 무지막지하게 들겄드랑께.” 

한 할아버지는 영화에 출연한 한 아이를 보러 왔다. “일곱 살 묵었는디 할머니하고 산다고 허드만. 지가 연기를 해야 밥 묵고 산다고. 까만 고무신 신고 똘랑똘랑 돌아다니는디, 내가 가게서 과자 사주고 그랬어. 나는 그놈 보러 왔어.”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영화제작사 키노2 김종원 대표, 정일성 촬영감독, 배우 오정해 조재현 오승은이 무대에 올랐다. 임권택 감독은 “<천년학>은 장흥군민들과 함께 만든 영화로 오늘 시사회는 ‘우리들이 보는 시사회’”라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영화가 상영됐다. 첫 장면이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웅성댄다. 장흥읍이 넓게 카메라에 잡혔기 때문이다. 영사기가 돌아가는 내내 관람석은 주고받는 얘기로 소란하다. 영화 속 배우보다 먼저 대사를 뱉어내는 사람도 있다. 찍고, 다시 찍고 촬영하는 내내 지켜봤다.

소설가 이청준의 고향인 진목마을 정임동(67) 할아버지는 영화를 다 보고 “<축제>는 잘 안 됐는디 <천년학>은 잘 됐으믄 좋겄어” 한다. 흥행 얘기를 하는 것이다. 고향 선배가 참여한 영화를, 장흥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긴 영화를 많은 사람이 봐주기를 바라는 것.

할아버지는 가장 감명 깊게 본 장면으로 선학동 주막 주위로 물이 차오른 장면을 꼽았다. 간척으로 땅이 돼 버린 곳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옛날처럼 바다로 바꾼 장면. “나 아조(아주) 애렸을(어렸을) 적 일이라 기억에 없었는디, 영화 본께 내가 본 것마냥 기억이 날라고 해. 글고 영화가 우리 옛날 정서를 잘 잡았던마. 소리꾼들이 그렇게 험난하게 살았어. 지픈(깊은) 의미는 한번은 더 봐야 알겄고.”    

 

 


 
기사출력  2007-04-30 18:18:28  
ⓒ 전라도닷컴  
출처 : 외투 벗는 일
글쓴이 : 헤르메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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