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학농장

[스크랩] 선학동 지킴이 최 기 홍 이장

선학농장 최귀홍 2015. 2. 22. 20:30

 

선학동 지킴이 최 기 홍 이장


 봄비 치고는 꽤 많은 양의 비가 포구를 흥건히 적시던 날 선학동 마을을 찾았다. 영화 천년 학 세트장인 주막은 낯 선이의 인기척에도 온기로 화답한다. 뒷산 관음봉(이청준작가 소설속 지명)이 마치 한 마리 학이 날개를 펼치고 곧 날아가려는 형상으로 바다에 비쳐 졌다 하여 이름 붙여진 선학동마을은 행정구역상 전남 장흥군 회진면 산 저 마을에 속해있다. 유채 꽃이 군락지어 병풍처럼 둘러쳐진 마을은 언뜻 보기에도 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마을 이장님을 찾았다. 선학동 출신이며 대덕중학교를 18회로 졸업한 그는 이미 인터넷상에 스타이장님으로 잘 알려진 최 귀 홍님이다. 정갈하고 소박한 한 옥에서 부인과 큰 딸 내외와 작은딸 그리고 귀여운 손녀 둘은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한 동네에서 떠들썩한 연애로 결혼에 골인한 부인 김 순아 씨와의 사이엔 1남 2녀가 있다. 일주일 전 득남한 맏딸 미진이 몸조리 차 친정에서 기거하고 있다고 한다. 큰 경사다. 위로 딸 둘 낳고 얻은 아들이니 왜 아니겠는가. 저녁 식사부터 하시라는 필자의 권유도 한사코 마다하고 이장님은 자신의 서재로 안내했다.


 책장에 빼곡하게 정리된 농업관련 서적을 보며 이장님의 열정을 미리 짐작 할 수 있었다.선학동 유채 꽃 밭 탄생 배경부터 여쭈었다.2006년 이청준 작가의 원작 선학동나그네를 각색해 만든 영화 천년 학 주막집 세트장이 건립된다. 연기자들과 군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천년 학 시사회는 언론의 화려한 주목을 받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이라는 근사한 타이틀이 붙었으니 두 말해 무엇 하리.


 이청준 작가 생가 방문과 연계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 제공으로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기에 이른다. 마을 주민들과 이장님은 장흥군의 지원을 받아 마을 앞 논 15ha와 마을 뒤 묵정 다락 밭15ha에 대규모 유채 밭을 조성한다. 가을에는 메밀도 심었다. 산책로와 원두막도 만들었다. 대체연료를 개발하는 정유회사가 전량 수매를 약속하고 농민들은 계약 재배를 한다. 다른 농작물 소득에 견줄 만한 고 소입의 꿈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선학동마을에게 정유회사는 타 지역 유채 재배 기피로 손해를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약속 파기라는 아픔의 통보를 보낸다. 상처 입은 마을 주민 몇 명의 회의적인 태도와 성토에 위기도 여러 번 있었지만 이장님은 끝가지 뜻을 굽히지 않는다. 생각을 같이한 주민들과 자신을 믿고 위로하는 마을 원로들의 성원으로 유채 밭 재배 면적 넓히기에 힘쓴다.


 그즈음 이장님은 지인의 도움으로 인터넷카페 선학동마을을 개설한다. 컴맹이었던 이장님은 피나는 노력으로 인터넷 상에 선학동 마을을 알리는데 힘쓴다.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현란한 유채의 절경을 카메라에 담고 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도 카페에 올렸다. 매일 영농일지도 썼다. 출향인 들을 위해서다. 농번기철이면 천근보다 무겁다는 눈 꺼 뿔을 이기며 컴퓨터와 씨름했다. 5년의 세월이었다. 고향을 그리는 출향인 들의 먹먹한 그리움도 해갈해주던 그의 열정은 선학동에 연고가 없는 일반회원들 마음까지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장님은 인터넷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 결과 선학동마을을 사랑하는 카페 순수 회원만 400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사월이면 유채꽃의 아름다운 모습과 시원한 바닷가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기위해 전국에서 내 로라 하는 사진작가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드라마 일지매와 예능프로 패밀리가 떴다 촬영으로 선학동은 유명세를 탄다. 선학동과 천년 학 세트장을 찾는 관광객들이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없는 불편함을 토로하여 올 봄 마을 초입에 천년 학 리조트를 건립하였다.


 성공 사례로 입소문을 탄 선학동 마을은 농림수산식품부로 부터 경관 보전 직불 제 대상 마을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게 된다. 주민은 더 많은 유채와 메밀 재배로 주변경관을 아름답게 하고 농림수산식품부가 그 댓 가를 직불제로 보상하는 사업이다. 대규모 지원도 약속 받았다. 전 국의 몇 안 되는 마을에 속한다고 한다. 인구 수 라야 고작 100여명이 살고 45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어촌 마을에 일어난 일이니 큰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그간 노력의 결과를 큰 소리 칠 법도 하건만 이장님은 그 공을 고스란히 마을 주민들에게 돌린다. 자신은 마을 대변자로서 심부름만 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의 고생했다, 수고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된다고 한다. 자신의 작은 수고가 출향인 들의 타향살이 애환을 조금이나마 풀어 줄 수 있다면 큰 기쁨으로 삼겠다고 한다. 겸손해하는 이장님의 얼굴에 문득 유채꽃 향기가 스치고 지나간다. 맞다. 영락없이 유채꽃을 닮았다. 물질의 잣대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세태에 돈 안 되는 봉사를 즐거움으로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면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여쭸다. 주민들의 고수입 창출과 이청준 작가의 위대한 업적을 계승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돈 안 되는 일 하면서도 이장을 믿고 오히려 격려를 아끼지 않는 마을 주민들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회진이 낳은 대작가 이청준님의 업적을 기리는 일이야말로 고향을 지키는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몫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필자에게 당부한다. 자신의 대한 칭찬이나 미화는 절대 쓰지 말고 대신 주민들 얘기를 좋게 써달라고 몇 번이나 반 복 하면서 말이다.


 가족들의 기분 좋은 환송을 뒤로 하고 대문을 나서니 더욱 세찬 빗줄기가 길을 막는다.

요즘 보기 드물게 마음 따듯한 사람들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도 하도 반갑게 인사해서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장님은 자신의 칭찬은 거두라고 말씀 하시지만 난 글 쓰는 사람이니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련다. 선학동 마을을 지키고 대변하는데 손색이 없는 사람이며 칭찬 받아 마땅하다고.


 코끝을 스치는 유채꽃 향기 때문일까 문득 허기가 진다. 이장님 다섯 살짜리 손녀 혜은이가 고사리 손으로 가져다 준 간식이 생각난다. 고소한 치킨과 상큼한 오렌지를 안 먹은 것이 후회스럽다.


 포구에 물이 차오르면 유채꽃은 더욱 고운 자태로 선학동을 빛나게 할 것이다. 비상을 서두르던 뒷산 학이 큰 날개 짓으로 바다에 떠오르면 세상 사람들은 천 년을 두고 선학동을 추억 할 것이다.               -유 정 란-



출처 : 장흥(정남진) 회진 선학동마을
글쓴이 : 박하사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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